삼국지 이야기 – 유비와 손권이 형주 때문에 싸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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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와 손권이 형주의 반환 문제로 싸운것은 유명한 일화인데

 

둘의 입장차이와 그 근거가 무엇인지 한 번 읊어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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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적벽대전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1.우선 유비는 신야에서 조조에게 쫓겨나서 강하에 있던 유기에게 몸을 의탁한 상황

 

2.그리고 조조는 형주의 북부 지역을 다 접수한 상태에서 손권에게 항복을 권고함

 

 

 

이 당시 손권의 입장은 매우 암울한 상황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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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손권세력은 토착 호족들의 입김이 매우 강한 호족연합체

(이런 문제로 인해 손권은 타지역 출신이나 한미한 가문의 사람들을 중용했고, 유력 호족 출신인 육손은 말년에 비참하게 죽여버린걸로 추정됨) 

 

2.게다가 손권은 창업군주 손책의 동생이고, 손권은 어린나이였음.  

즉 손권은 호족세력은 물론 부하장수들에게 조차도 신망이 없는 상태였음.

 

이런 상황에서 호족세력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주장했는데

 

호족들의 입장은

 

1.군사력도 딸림

 

2.명분도 딸림

(조조는 헌제를 끼고 있었지만, 손권은 엄밀히 말하면 한실 관리를 내쫓고 힘으로 양주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음)

 

이러다 보니 손권은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때 손권에게 명분을 준것이 바로 유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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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장군 유비는 조조를 제거하라는 헌제의 밀서를 받아든 황실의 종친으로 반조조 세력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었음

(이거 때문에 원소도 유비를 데리고 있었던적이 있음)

 

그렇기에 유비를 내세워서 손권은 전투에 나설 수 있었음

물론 호족들은 전쟁을 반대했기 때문에 군사적인 지원이 없었던건지

손권은 겨우 3만의 병력을 동원했고, 유비는 2만의 병력을 동원했음(개인적으로 유비군 2만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함)

 

 

어쨋든 유비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시작한 적벽대전에서 승리 하고, 그 덕분에 형주남부를 공략할 수 있게 되는데

 

결국 형주남부 공략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적벽대전이므로 적벽대전의 기여도 역시 형주의 기여도에 직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일단 전투 자체는 손권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나

 

일단 유비군도 세력이 어느정도는 있었고, 유비가 아니었으면 전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지않아 있음.

 

 

 

적벽대전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으로서 형주를 챙기려고 했을 때

 

이당시 형주의 상황에 대해서 말해주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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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는 형북과 형남으로 나눌 수 있는데

 

조조는 형북까지만 접수한 상태였고 형남은 유표의 지역이었으나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해서 형남지역이 약간 붕떠버린 상태였음.

 

추가로 형북은 남양군(완+신야), 양양군, 남군(강릉), 강하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북이 형주의 70%라고 봐도 무방함

(손권과 조조가 다툰 지역은 남군+형남인데… 사실 형주의 절반도 안되는걸 가지고 둘이 싸워댄거고 

관우가 상실한 형주지역이란게 사실 형주의 25%도 안되는 구역임)

그리고 형남은 계양군 장사군 영릉군 무릉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구수는 많지만 미개발지역에 이민족들이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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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주유는 남군(강릉)을 공략하는데

 

남군 공략에 성공하면 조조군이 형남을 공격하는 손유 연합군을 견제할 수단이 없어지기 때문이였고

 

결국 1년에 거친 싸움끝에 조인을 몰아내고 남군을 점령하는데 성공하는데

이과정에서 남군을 접수하기도전에 유비가 자력으로 형남4군을 접수해버림

 

이걸 뭐 삼국지 연의처럼 제갈량의 꾀로 접수했다고 보는건 무리고

 

이 형남4군을 접수한것은 아무래도 손권의 묵인이 있었던걸로 추정이 되는데

그러면 왜 손권은 형남4군을 직접 접수하지 않았느냐?

 

 

이는 아무래도 형주가 유표의 영역이였기 때문에

 

본인들이 직접 다스리는것 보다는, 유표의 아들 유기의 대변인 유비가 그들을 다스리기 쉬울것으로 추정해서

 

묵인한것으로 추정됨.

 

그리고 그것도 모잘라서 형남4군을 다스리라고 본인들이 직접 점령한 남군의 일부를 떼어주고, 나중에는 남군을 더 빌려다라는 유비의 요구대로 전부를 빌려줌

(처음에는 힘을 키워서 같이 조조를 막자고 일부를 빌려준거고, 나중에는 남군이 조조세력권과 바로 맞닿는 지역이니 조조를 대신 막으라고 남군을 준것으로 추정됨)

 

그뒤에 손권은 유비에게 같이 서천을 점령하자고 제의하나

 

유비는 유장의 뒷통수를 후릴 수는 없다고 거절

 

손권이 그러면 길만 비키라고 했는데 막아섰음.

 

그리고 유비는 유장과 손권 둘의 뒷통수를 모두 후려치고 서천을 독자적으로 점령하는데 성공함

 

 

 

그리고 이 때 ‘처음으로’ 손권이 형주의 여러군의 반환을 요구함

 

그리고 유비는 량주(서량)을 접수하게 되면 그 때 돌려주겠다고 답장을 보냄(형주를 빌렸다고 인정한거임)

 

이 답변을 듣고 시간끌기라면서 분노한 손권은 

 

형남 3군에 관리를 파견했는데, 관우는 이 관리들을 쫓아내자

 

군사를 파견해서 무력으로 한순간에 

 

형남의 3군을(장사 영릉 계양) 접수해버림

 

이에

 

분노한 유비는 관우를 익양에 보내서 대치시키고

 

본인도 군사를 끌고 지원을 갈려고 했으나

 

 

그 때 조조가 한중을 접수했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유비는

 

손권에게 강하군, 장사군, 계양군을 양도하고  철수함.

 

 

근데 여기서 강하군과 장사군은 이미 손권이 절반정도는 원래 떼어내서 다스리고 있는 상태였음.

어쨋든 이 이후로 손권은 형주의 반환을 요구한적이 단 한번도 없음.

 

 

 

손권 입장 : 우리가 적벽대전 거의 다 했고, 너네가 형남4군 먹은것도 우리가 남군에서 탱킹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거다

 

               그리고 우리가 너네한테 남군 필요해서 우리가 빌려줬던 남군은 굳이 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음

 

 

유비 입장  : 우리도 적벽대전에서 지분이 있고, 형남4군은 우리가 자력으로 먹은거인데 왜 줘야 하냐?

 

 

 

하여튼 이때 이후로 더이상 형주 문제로 싸우진 않았지만 사실상 동맹관계는 끝이 났음

 

 

 

그리고 이 이후로 손권이 관우를 공격한것에 대해서 손권의 대국적인 안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전지적 유비시점에 기인한것임

 

그당시 시대적 상황은 비록 세력은 조조>>유비였지만 유비군의 기세가 조조군을 넘어섰음

 

이는 한중공방전에서 조조가 패하고 물러가자

 

유비가 한중왕표를 올리고 한중왕에 오른것에 기인하는데…

 

 

삼국지를 읽다보면 ‘왜 하필 한중왕으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이 한중이라는 지역이

한고조 유방이 재기한 땅으로서 

 

유비가 한중왕표를 올린것은

 

“나는 한고조 유방의 후손으로서 한고조 유방과 같이 역적 조조를 멸하고 한실을 바로세우겠다”라고 선언한건데

 

이것은 그 엄청난 정치적 퍼포먼스였음.

 

이 때문에 조조는 각지에서 반란에 시달리면서 세력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손권의 입장에서는 1인자가 교체될수도 있다고 느낄수도 있었음

 

 

여기서 손권이 한중을 친 이유는

 

1.형주의 남부를 접수한뒤에 양양과 번성을 함락하면 장강 방어선이 구축되어서

기존에 노출되어 있던 수도 건업의 방어를 더 탄탄하게 할수 있었음

 

 

2.합비에서의 수많은 패배 때문에 형주 방면으로의 진출 교두보의 필요성을 느꼈음

 

 

3.1인자인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2인자인 손권과 3인자인 유비가 손을 잡았는데

3인자가 2인자를 넘어서서 1인자가 되는동안 손가락 빨기 VS 뒷통수 치고 형주 얻고2인자 굳히기

 

손권의 입장에서는 형주를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음.

 

 

그리고 유비는 형주를 상실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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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비는 다시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형주를 노리는데

 

유비의 생각이 꼭 틀렸다고는 볼 수 없는게

 

유비 사후에 제갈량이 험난한 진령산맥을 넘어서서 북벌을 했다가 퇴각하길 반복하는것을 고려했을 때

 

북벌의 교두보인 형주의 중요성이 절실했으며

 

이미 위나라의 영역이 되어서 오래 통치한 옹주와 량주 지방 보다는

 

자신들의 세력권이였던 형주지역을 노리는것이 더 얻기 쉽다는 선택지였을수도 있음.

 

실제로 유비가 형주로 진출하자 이민족들과 일부 세력권이 유비에 가담했으나 

 

유비는 이릉에서 패전을 하고 마는데

 

이 이릉이라는곳이… 사실 형주의 입구임.

 

연의를 읽어보면 동오가 멸망직전까지 몰리는것으로 묘사되나

 

실은  형주 입구에서 쳐발려서 유비에게 호응한 세력과 제대로 접선도 못했음.

 

 

하여튼 이 이후로 촉은 형주에 대한 의지를 상실했고

 

형주 문제로 싸우지는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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