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유학생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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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배기 아이는 창문턱에 올라서서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환한 웃음을 보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창턱 아래 벽 바깥쪽에는 이슬람 예배소 건축을 반대한다는 문구를 쓴 배너가 붙어 있었다. 아이가 사는 집의 옆집이 바로 이슬람 센터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보러온 어머니는 창문 밖 이방인 기자의 얼굴을 보자 황급히 모습을 감췄다. 곧이어 나타난 아버지에게 “리포터”라고 밝히며 말을 걸었다. 아이의 아버지인 경북대 전자공학부 박사과정생 무함마드 아딜(33)은 집 밖으로 나오겠다고 말했다.

중단된 이슬람 예배소 건축 공사

대구 북구 대현동의 경북대 대구캠퍼스 서문 일대는 조용한 주택가다. 단독주택과 다세대·다가구주택이 혼재된 이곳에서 아딜의 가족도 생활하고 있다. 아딜이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에는 아딜의 친지와 지인도 각기 세 들어 있다. 아딜네 집 바로 옆에 일반주택을 개조해 자리 잡은 ‘다룰에만 경북 이슬람 센터’가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새로 건축 중인 센터 공사장이 있다. 파키스탄 출신인 아딜은 “대학 연구실도 가깝고 예배소도 가까워 이곳에 세를 얻었다”면서 “무슬림들은 고향에서도 집이나 일터와 가까운 거리에 예배소가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서 왕래하기 쉬운 이곳에 예배소를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예배소를 찾는 무슬림들은 대부분 경북대에 다니는 유학생들이다. 공학을 전공하는 비율이 높아 공대 건물과 가까운 대현동에 주로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유학생 150여명이 모여 함께 예배소를 쓰고 있지만 현재 쓰고 있는 건물은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좁다. 그래서 바로 옆 주택에 2층짜리 새 건물을 짓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반대해 건물은 철골만 세워두고 공사를 더 진척시키지 못하는 상태다. 서창호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은 “차가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골목 입구는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차를 세워두고 막은 채 돌아가며 보초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아딜은 예배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주민이 거리에 나타나자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일리걸, 일리걸(불법)”이라며 주민들이 주변에 살거나 예배소를 드나드는 무슬림들을 위법하게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들이 골목에 나와 놀지 못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것은 물론 혹시라도 위험이 닥치진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서 특별히 한국인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창밖의 행인들에게 거리낌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아딜도 “점심 안 먹었으면 들어가서 같이 먹자”고 말할 정도로 거리를 두지 않았다.

이 일대에서 다른 주택가와 다른 모습을 찾자면 줄줄이 걸려 있는 현수막뿐이다. 대부분은 주민들이 내건 이슬람 예배소 건축 반대 현수막이고, 대구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존을 촉구하며 내건 현수막 몇몇이 눈에 띈다. 이 동네에 이슬람 예배소가 자리 잡은 때는 20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주민들이 처음부터 반대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갈등은 새로운 예배소 건물 건축이 본격화된 지난해 12월부터 불거졌다. 건축주가 대구 북구청에 착공 신고를 했고 허가를 받았으나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북구청은 2월 16일 건축 중단을 명령했다. 건축이 중단된 기간 동안 주민들과 무슬림 유학생들 간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자며 다른 위치에 새로운 예배소를 마련하려 했지만 이 대안도 수용되지 못했다. 결국 지난 7월 5일 예배소 건축주가 대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북구청을 대상으로 공사 중지명령을 철회시키기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구지법은 7월 19일 공사 중지명령의 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주민들이 결성한 ‘이슬람사원 건축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공사장 입구를 막고 있어 공사를 강행하지도 못한 채 한달이 넘게 흘렀다. 주민들도 예배소 건축을 반대하는 논리는 있다. 종교시설이 들어서면 주거환경이 악화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일 뿐 이슬람이라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예배소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 A씨는 “몇년간 지켜봤지만 이슬람 교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기도를 하기 때문에 그 소음을 견디기 힘들다”면서 “인종차별·종교차별을 해서 그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공사장 앞을 지키고 있던 비대위의 김정애 부위원장도 “우리는 생존권 차원에서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현동이 유독 마찰 큰 까닭

대구는 이슬람 예배소가 많이 세워져 있는 도시다. 한국 이슬람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서울중앙성원을 비롯해 전국에는 17곳의 이슬람 성원(聖院)이 있는데 대구에도 달서구 죽전동에 이슬람 성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슬람 소개 웹사이트 ‘이슬람 인 코리아’에 소개된 성원과 예배소 위치를 보면 대구에만 7곳의 성원·예배소가 있어 도시 단위로는 가장 많은 이슬람 종교시설이 몰려 있다. 이중 대현동의 예배소를 제외하면 나머지 6곳은 모두 공단지역 가까이에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들르기 쉬운 가까운 곳에 예배소를 마련한 것이다.

대현동 외의 예배소는 공단 인근 상가건물 등에 자리를 잡아 상대적으로 주민들과의 마찰은 드문 편이다. 이곳의 무슬림들은 출신국은 다양해도 남성 공단 노동자라는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에 ‘다문화’라는 표현에 덜 익숙하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했어도 가족은 자신의 고국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정부나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다문화 정책을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슬람 대구성원 앞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출신 무슬림 이주노동자 압둘 아지(29)는 “성서공단 무슬림 노동자들이 많이 가는 예배소는 공단과 가까운 곳에 있고, 하루 일을 마치면 각자 쉬거나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끼리만 어울린다”며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말고는 한국인과 만날 일이 적다”고 말했다.

반면 가족과 함께 사는 비율이 높은 편인 무슬림 유학생들은 ‘다문화’라는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차별의 뉘앙스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아딜은 2년가량 더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도 계속 한국에서 일할 예정이다. 한국에 머무르기 위해 고국과는 다른 한국만의 제도와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왔다. 아딜은 “그런데 한국사회는 우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지 이슬람 예배소 건축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아예 동네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눈빛을 자주 마주친다는 것이다.

공단지역을 제외하면 대구에서 외국인 등록인구가 가장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경북대를 끼고 있는 대현동과 산격동이다. 동네 특성이 외국인 유학생이 밀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갈등의 소지도 크지만,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유학생들이 체감하는 차별과 혐오의 강도가 높다. 중국 등 동아시아 출신 유학생에 비해 무슬림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어도 한국인과의 외모 차이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아즈 라자크 경북대 무슬림 커뮤니티 대변인은 “주민들이 쏟아내는 혐오와 차별의 강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특히 어린 자녀들 앞에서 테러리스트, 살인마라고 손가락질하고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팸플릿을 나눠주기까지 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집주인 넘치는 대림동

대구 대현동과 달리 ‘다문화’가 아예 동네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자리 잡은 곳에선 어떨까.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중국과 한국 문화가 만나 만들어진 다문화의 현실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동네다. 특히 대림2동의 차이나타운부터 도림로를 따라 가리봉동 연변거리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색다른 냄새로 한국 속의 중국을 만날 수 있다. 거리의 식당에서 풍겨오는 양고기나 마라탕 냄새 말고도 과일가게의 용과 냄새처럼 국내의 다른 전통시장에서는 맡기 어려운 냄새들이 동네의 인상을 각인시킨다.

“저쪽으로 가서 얘기합시다.” 대림중앙시장에 있는 한 한국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나오던 대림2동 주민 양모씨(68)는 대림동 분위기를 묻자 바로 대답하기를 꺼렸다. 행인의 인파가 다소 뜸한 골목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는 “이 동네에서 괜히 중국사람 평가했다가는 장사 못 한다”며 즉답을 못 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양씨가 말하는 동네 분위기는 살벌한 내용이 아니었다. 양씨는 주택 한채와 상가건물 한채를 가지고 중국 출신 세입자들에게 세를 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대림2동 일대 중국 출신 이주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단독·다세대주택은 자신 같은 한국인보다 중국인 집주인들이 더 많은 형편이고, 양씨가 자신의 상가건물 1층에 열어놓은 식료품점은 매장 관리자부터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모두 중국인들만 고용해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중국사람 욕하려는 건 아니고, 다만 그 사람들이 돈줄이니까 눈치는 봐야 한다는 거지”라고 양씨가 말했다.

중국 지린성 출신 한국계 중국인 김성운씨(43)는 한국에 정착한 지 12년째다. 대림동처럼 이주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동네에 대한 편견도 몸소 겪었지만, 이제는 아예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한국에 첫발을 딛고 살았던 구로구 가리봉동 ‘벌집촌’에서 출발해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일터를 갖게 됐다. 처음 일을 시작한 건설현장에서 운 좋게 목공 일을 배우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덕분에 이제는 새벽마다 현장으로 나가 일하는 대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강사를 찾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기술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는 “애써 모은 돈으로 식당을 차렸다가 망해버린 경험도 있지만 결국에는 중국에서 어머니 모셔올 정도로 생활이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편견 품은 일방적 혐오 멈춰야

자녀까지 한국에서 학교에 보낼 정도로 한국사회에 정착했기 때문에 대림동, 더 나아가 한국을 떠날 생각도 없다. “까딱 잘못하면 비자 취소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칼부림을 하겠어요? 더구나 자식까지 온 가족이 한국에서 사는 마당에.” 김씨의 딸은 대림중앙시장 바로 옆 초등학교에 다닌다. 2018년 신입생 전원이 다문화가정 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다. 지난해 기준 이 학교의 다문화학생 비율은 73.8%에 달했다. “농담 아니라 이 학교에서는 한국 학생이 밀린다는 얘기가 있다”며 김씨는 “한국 학생이든 한족 학생이든 따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같은 중국 출신이라도 대림동에서는 한족 중국인들이 조선족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비율이 낮아 입지가 밀리는 현실을 반영한 얘기다.

“한족은 중국어만 할 줄 아니까 조선 동포처럼 독립해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고 김씨는 말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무기로 활용하는 조선족 출신과는 달리 한족 중에는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충을 겪고, 중국 출신 이주민 사이에서도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말과 연변 말씨, 중국어가 섞여 오가는 대림동 일대에서도 이주민 각자가 쌓아둔 자산과 역량에 따라 또 다른 차별이 일어나는 현실이 존재하는 셈이다.

서울의 대림동이 한때 ‘우범지대’라는 편견에 시달렸으나 강남 못지않은 월세를 내는 점포가 생길 정도로 탄탄한 상권과 이주민 공동체를 이룬 것처럼 대구의 대현동도 종교와 인종이 얽힌 차별의 실마리를 풀고 다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바뀔 수 있을까. 이슬람과 무슬림을 향한 편견이 강화되는 국제정세로 볼 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민사회에서 해법을 찾기 위한 첫 단추라도 끼워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박충환 경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의장은 “자유, 평등, 인권은 전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임에도 대학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 이를 보장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되고 있다”며 “이슬람 유학생들을 테러리스트로 내모는 근거 없는 확증편향과 편견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박래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도 “혐오와 차별을 막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인데 북구청의 일방적인 공사중지 명령은 주민 민원에 굴복해 혐오 세력에 힘을 실어준 셈”이라며 “전 세계의 20%인 무슬림이 모두 테러리스트는 아니듯 편견을 갖고 자행되는 일방적인 혐오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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